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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경을 가지고 싶어한 아이 22 [참새미절]
망원경을 가지고 싶어한 아이 22 [참새미절]
  • 김도형
  • 승인 2024.04.22 1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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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인시장흑백사진관 김도형 사진작가 첫번째 에세이집 '망원경을 가지고 싶어한 아이' 온라인 연재
사진 김도형 (인스타그램 photoly7)
사진 김도형 (인스타그램 photoly7)

 

주말이 되어 고향집에 가 있을 때였다.

늦은 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청년이 있었다.

청년은 빵과 음료수를 사서 목로에 앉아 먹었다.

내 또래로 보이는 청년에게 버스도 없는 시각에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다.

부산에서 대학을 다닌다고 하면서 고향집에 가려고 읍내 터미널에 내렸는데 버스가 끊겨 20리 길을 걸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나도 부산에서 대학을 다니는데 어느 대학 학생이냐고 물으니 뜻밖에 나와 동문이었다.

그 학생의 이름은 김준호이고 그때 이후로 나와 절친이 되었다.

준호는 독문학을 전공했으나 사시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곧 마산시 진동에 있는 어느 절로 여름 방학 동안 공부를 하러 간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구미가 당긴 나는 같이 가자고 했다.

그 절은 ‘참새미절’ 이라고 불렸는데 맑고 수량이 풍부한 샘이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여진 것이었다.

진동 시내에서 걸어서 삼십 분 거리에 있는 절이었다.

나는 진동에 내리자마자 신문지국을 찾았다. 

다행히 한국일보 지국이 있었지만 절까지 거리가 멀어 배달이 문제였다.

지국을 운영하는 어르신께 사정을 말했더니 절에 물도 뜨러 갈겸해서 아침마다 오토바이로 배달해 주겠다고 하셨다.

걱정이었던 신문 구독을 해결한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절을 향해 걸었다.

먼저 가 있었던 준호가 마중을 나왔다.

절을 둘러싼 느티나무들에 붙어있던 셀 수도 없는 숫자의 매미가 함께 울어대는 소리의 데시벨은 엄청났다.

각각 방 하나씩을 차지하고 공부를 시작했는데 과연 학교 도서관과는 사뭇 다른 면학 분위기거 느껴졌다.

어느 날 건장한 남자 두 명이 절을 찾아와서 우리들에게 주민증을 제시하라고 했다.

누구냐고 물었더니 경찰이라고 하면서 데모를 하다 도피 중인 학생을 색출하는 중이라고 했다.

간혹 어느 신도가 치성이라도 드리는 날이면 떡과 과일 파티가 벌어졌다.

우리는 삼겹살을 사와 절 뒷산에서 구워 먹었던 적도 있었다.

준호가 가진 가스버너 위에 책받침만한 슬레이트 조각을 불판 삼아 고기를 구웠는데 산중에서 먹는 삼겹살 맛은 일품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었다.

슬레이트는 암을 일으키는 물질인 석면 덩어리인데 그 위에 고기를 구워 먹다니 완전한 무지의 소치였다.

그 절에 있는 동안 토플 책 5회독을 마쳐 거의 외울 정도가 되었다.

비가 와도 거르지 않고 아침마다 신문을 배달해 주셨던 진동 한국일보 지국장님, 연로한 몸으로 세 끼의 끼니를 챙겨 주시던 공양주 할머니가 지금 생각해도 고맙다.

새 학기가 되어 절에서 내려와 학교에 갔다.

어느덧 3학년 2학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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