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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항아리 백자의 장인, 장안요 신경균 도예가
달항아리 백자의 장인, 장안요 신경균 도예가
  • 백준상 기자
  • 승인 2018.04.04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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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계올림픽을 거치며 달항아리 백자가 평화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떠올랐다. 문재인 대통령의 VIP 선물목록에도 이름을 올린 달항아리 백자. 장안요 신경균 도예가를 만나 달항아리 백자와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 물었다.
취재 백준상 기자 | 사진 양우영 기자

보름달을 닮은 둥근 형태의 달항아리 백자가 최근 한국사회의 화두로 떠올랐다.
평창동계올림픽의 성화는 달항아리 위에서 활활 불타올랐다. 우주선의 다리 같은 다섯 기둥을 제외하면 성화대는 완연한 달항아리 형태다. 성화대를 디자인한 이노디자인의 김영세 대표는 “조선백자 중에서 가장 섬세하고 우아한 형태인 달항아리를 통해 흰색의 아름다움, 우아한 곡선미, 담백한 한국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사례. 지난 2월 8일 청와대에서 열린 독일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에게 달항아리 백자를 선물했다. 문 대통령은 선물을 전하며 독일 대통령에게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의 조용한 정치적 행보와 신중함, 성실함이 묵묵히 작업에 매진하는 우리 전통 도예의 모습과 상통한다고 생각한다”면서 “대통령 내외분이 오래도록 금실 좋게 잘 지내시고, 아울러 남북한이 하나의 그릇이 돼서 세계 평화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달항아리는 한국적인 아름다움과 정서가 가장 성공적으로 표현된 예술품의 하나다. 미술사학자 고(故) 최순우 선생은 “흰빛의 세계와 형언하기 힘든 부정형의 원이 그려 주는 무심한 아름다움을 모르고서 한국미의 본바탕을 체득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라며 백자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에 대해 찬미한 바 있다.

달항아리는 규모가 커서 한 번에 물레로 만들기 어려워 위와 아래의 몸통을 따로 만들어 붙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완벽한 조형미보다는 부정형의 둥근 멋을 내는 한편, 화합 또는 통합의 이미지를 대변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달항아리 백자를 귀빈을 위한 선물로 고른 이유다. 문 대통령이 선물한 달항아리 백자는 부산 기장에 있는 장안요 대표인 신경균 도예가가 제작한 작품이다.

신경균 도예가의 달항아리 백자의 진수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서울에서 있었다. 지난 1월 26일부터 2월 4일까지 조선일보미술관에서 열린 신경균 개인전 ‘서울에 뜬 달’이 그것이다. 신 작가의 달항아리 신작과 지난 2014년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 전시됐던 달항아리 등 전시된 20여 점의 작품들은 조선시대부터의 명맥을 이으며 진화해가는 달항아리 백자의 아름다움을 선보여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평화를 부르는 도자 작업
“아름다운 것을 보고서는 아름답다고 하면 되는 것입니다. 구구절절 다른 말을 할 필요가 없지요. 우리가 석양을 보고, 혹은 일출을 보고 아름답다고 하듯이 도자기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아름다움이 느껴지면 ‘아름답다’는 한 마디 표현으로 족한 것입니다.”

신경균 도예가와의 인터뷰는 전시회가 끝난 하루 뒤 그의 서울 집에서 이뤄졌다. 이틀 전 전시장에서 짧은 인사를 나눴던 바였지만 작가는 여전히 과묵한 편이었다. 출가하여 중이 되는 것이 꿈이었고 지금도 스님들과 교류가 많은 그와의 인터뷰는 선문답처럼 이어졌다.

“도자기를 가마에서 꺼냈을 때의 느낌은 새 생명이 탄생했을 때처럼 평화롭습니다. 뜨거운 맛을 보다가 그것이 사라졌을 때의 평온함. 욕망은 다 녹아버리고 자유와 평화만 남아 있지요.”

장안요 작업의 모토는 ‘Peace & Love’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가마에서 잘 익은 목숨을 건지는 것에 비유했다. 잘 익지 않았으면 목숨을 거둬들이는 비정한 작업이기도 하다. 숱한 도자기들이 태어나자마자 그의 망치질에 명을 다했다. 가마에 불을 때 도자기 한 점 얻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 만큼 이번에 선보여진 달항아리들은 특별한 생명력, 즉 작품성이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성황리에 끝난 이번 전시회에서 작가는 2017년 신작과 2010년 이후의 작품 중 달항아리 백자 위주로 선보였다. 미술사학자 고유섭 씨가 “무기교의 기교”로 평한 <청우(靑雨)>, “구수한 큰맛”이라고 평한 <월하정인(月下情人)>도 전시됐다.

신 작가는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된 흙이 나올 때까지 백자 달항아리를 시도하지 않다가 몇 년 전 달항아리에 알맞은 양구 백토와 하동 백토 등을 구할 길이 열려 그때부터 달항아리를 만들고 있다.

대형 달항아리는 잿물(유약)을 바르는 과정에서 100㎏에 육박할 만큼 만드는데 육체적인 힘이 필요하며 가마에 들어가서 그 모양을 온전히 유지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고 한다. 대형 달항아리가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높은 이유다.

청색, 황백색 등 신경균 도자만의 독특한 색에는 도예가가 축적한 독특한 제작방법과 장작가마 속 고온에서 펼쳐진 자연의 미학이 담겨 있다. 특별한 조합의 흙 또는 다양한 나무재 잿물(유약) 사용으로 색상 표현력을 높였다는 평이다. 한 그릇 안에서도 짙고 옅음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도자기는 일반적으로 눈으로써 형과 색과 선을 판별하여 평가하지만 신 작가의 도자기는 시각 외에 촉각을 더해야만 그 진면목을 알 수 있다. 신 작가는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만져볼 수 있도록 했다. 값비싼 도자기를 관람객들에게 직접 만져보게 한 것은 전시회의 ‘사건’이라 할 정도로 파격적인 것으로, 미술관 직원들은 조마조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들 희고 고운 피부를 ‘도자기 피부’라고 말한다. 직접 만져본 달항아리의 피부는 작품에 따라 질감이 조금씩 달랐으나 사람의 살결처럼 부드럽고 매끄러우면서고 따뜻한 질감이 있었다. 이러한 따뜻한 질감은 가스가마가 아닌 전통가마를 사용하기에 가능한 것이라 한다.

신경균 작가는 그 힘들고 어려운 전통 장작가마를 고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조선후기 맥이 끊어진 사발의 전통을 되살린 사기장 신정희 선생의 아들로 태어나 열다섯 살에 도자 제작에 입문, 부친으로부터 전통 도자 제작기법을 이어 받았다.

 

도자기는 불의 예술, 신의 뜻에 따라 만들어진다
신경균 작가의 전통 도자 작업은 자연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그의 작업은 도자는 사람이 빚고 자연이 마무리하는 과정을 거친다. 자연의 재료를 그러모아 사람이 힘을 들여 빚지만 결국 불의 힘으로 도자기가 완성된다.

그는 여러 흙을 조합하여 태토를 직접 만들고 직접 나무를 패고 태운 재를 사용해 잿물(유약)을 칠하며, 지금도 기계를 사용하지 않는 발 물레질로 도자의 형태를 빚어낸다. 인력으로 돌린 도자 기형은 기계로 잘라낸 듯 똑바르지 않지만 ‘비정형의 정형’을 보여주며 자연스러운 선을 만들어낸다.

잿물(유약)은 아궁이에 불 땔 때 쓴 참나무 재를 모아서 김치 담그듯 직접 조합하여 만든다. 초벌한 도자에 잿물을 바를 때 잿물의 두께를 손으로 확인하는데, 잿물을 휘저어 손등에 흐르는 잿물과 솜털 사이로 잠기는 투명도를 보고 잿물의 농도를 결정한다.

여름 장마철에는 자석을 들고 냇가로 가서 철가루를 모은다. 이렇게 힘들게 모은 철가루를 걸러 철화문 도자를 만드는 도료로 사용하는데, 시중에 파는 산화철과는 전혀 다른 짙은 빛깔을 낸다.

그는 직접 설계한 전통 장작가마를 사용해, 1350℃의 고온으로 도자를 굽는다. 온도를 올리기 위해 다른 장작가마에 비해 장작이 몇 배 더 필요하다. 겨울에는 장작가마에 들어갈 소나무 장작을 팬다. 소나무 장작은 가마에 들어갔을 때 불에 튀지 않도록 일일이 껍질을 벗겨내고 5~7년이나 건조시킨다.
우리나라 가마는 중국의 돔 형태와 달리 경사진 등요(登窯)다. 등요는 균일한 결과를 낼 수는 없어 완성도의 편차가 크지만 돔형에 비해 최상품 제작이 가능한 특징이 있다고 한다.

가마의 불 온도는 예리한 눈과 경험에 대한 감각으로 정하는데 길게는 72시간까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한다. 1~2도 차이로 도자가 흘러내리기 때문에 적정한 순간에 가마에 때던 불을 멈춰야 하기 때문이다. 도자가 식어가는 불의 온도를 흡수하여 단단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5~10일 뒤에 도자를 꺼낸다.

“도자는 신의 뜻으로 만들어집니다.”
신 작가는 가마에서 나온 도자기의 완성도는 더 이상 자신의 소관이 아닌 듯이 말했다. 도예가와 자연의 합동작업인 그의 도자기 제작에서 가장 중요한, 불이 만들어 가는 소성과정은 전적으로 자연에 속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하니 졸작이 나오든 명작이 나오든 수긍할 수밖에 없다.

그는 도자기를 만드는데 있어 사람이 노력하는 부분은 전체 과정에서 10%밖에 되지 않는 다고 했다. 나머지 90%는 불이 맡아서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최선을 다해도 안 될 때가 있다고 한다. 10개를 구워 하나만 건져도 감지덕지다. 그저 정성을 다 할 뿐이라고 했다.

불 통제가 쉬운 가스가마를 놔두고 그 어려운 장작가마를 고수하는 이유가 뭐냐고 그에게 물었다.
“비용도 많이 들고 현실이 힘들어도 제가 좋아서 하는 일입니다.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죠. 제가 지키고 싶으니까 하는 것입니다. 과정이 힘들고 불편하다고 바꾸면 이제 복원이 안 됩니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을 제가 할 뿐이죠.”

 

도자기 만들기는 인생을 닮아
신경균의 도자는 달항아리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는 다완부터 사발, 화병, 달항아리까지, 백자 분청자 청자 약토 등 장르를 불문하고 작업한다. 사용하는 흙도, 도자의 형태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가마도 한 군데만 고수하지 않는다. 익숙함과 편안함에 안주하는 것을 스스로 경계하는 그다.

평생에 걸쳐 가마 하나를 짓는 것도 힘들다고 하지만, 신 작가는 지금껏 가마터만 일곱 번 옮기며 가마를 지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된 가마터 324곳 중 300곳 이상을 돌아봤다고 한다. 역사적 기록에 따라 좋은 흙과 환경이 구축된 곳으로 이동해 가마를 지어 도자를 만들었다. 가마도 생명이 있어 오래 지나면 사용하지 못한다는 그는 가마의 숨과 생명을 몸소 느끼고 진단하는 일을 무엇보다 중요시 한다.

“옛것을 이해 못하면 현재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옛것에 머물기만 해서는 발전이 없어요. 시대에 맞는 기술과 스타일을 개발하고 접목해 나가야 합니다. 전통에 접목한 현대를 끊임없이 창조해 나가야지요."

신 작가는 단순한 기능공으로 남지 않겠다며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중국 일본 유럽 등 세계의 도자 역사에 대해서도 해박하다. 중국 일본 프랑스 영국 등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조선시대 도자기와 고미술품을 수집하기도 한다.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이는 생활용기인 도자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전통을 더 파고들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너무 모릅니다. 공부도 하지 않고요. 우리 것이 대단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우리를 발견한 적이 없습니다. 유럽의 어느 박물관에 가보니 그 옛날에 우리의 도자기를 직접 주문해 소장하고 있더라고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삼겹살을 굽더라도 각자 자신만의 대단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하물며 도자기는 말할 필요도 없지요.”

영국인 아트디렉터인 아담 슈터랜드는 도예가로서의 최고의 정점을 일상과의 연결이라고 꼽았다. 쓰임이 있는 생활 속 예술로 우리 곁을 지켰던 조선 백자의 위대함을 지목한 말로 읽혀진다.

신경균 작가가 만드는 도자기의 대부분은 매일 사용하는 생활자기이다. 그 생활자기들은 매일 접하는 것이지만 장인의 손길을 닿아 일상을 초월한 비범함을 지니고 있다. 그는 매일같이 살아있는 전통 안에서 작업하며 이를 더욱 발전시켜 나간다. 그의 기법들은 도자의 높은 수준을 구현하고 그 기술들은 이제 그 자신과 하나가 되었다. 그가 수많은 노력과 정성을 들인 덕분이다.

“세상에 공짜로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 어떤 고통 속에서 단련이 되어야지요. 도자기는 고온의 불에 익어져야 합니다. 문득 인생도 그렇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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