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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여옥 전 의원, 아들바보로 산 지난 4년 & 박대통령에 대한 생각
전여옥 전 의원, 아들바보로 산 지난 4년 & 박대통령에 대한 생각
  • 송혜란
  • 승인 2017.01.03 1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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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대 서울 영등포구 갑 국회의원을 마지막으로 파란만장한 정치 생활을 끝내야 했던 전여옥. 그로부터 4년, 그녀는 그동안 어떻게 지내왔을까? 최근 많이 받는 질문이지만 그녀의 대답은 늘 한결같다. “육아에 전념했어요.” 엄마인 그녀의 정치 활동으로 인해 아들 역시 평탄치 못한 삶을 살았다. 자신이 국회의원으로 있는 지역구에서 자녀를 키우는 일은 결코 녹록치 않은 일이었을 터. 가뜩이나 시국이 혼란스러운 요즘, 국회의원 활동 당시 그녀가 했던 발언들이 온라인에서 ‘전여옥 어록’으로 떠돌고 있는 가운데, 최근 저서 <흙수저 연금술>을 펴낸 그녀를 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취재 송혜란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홀려서, 꽂혀서 혹은 나름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늘 돌진했다는 그녀는 지난 정치생활에 대한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최선을 다했어요. 정치인으로서 제일 중요한 게 국민에게 얼마나 정직했느냐에 있다고 봐요.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이었던 박근혜 대통령 문제는 그때도 너무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국회의원을 그만둘 각오로 했던 말들이에요. 애초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될 사람이었어요. 이를 알리지 않으면 박근혜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온 나라의 비극이 될 게 뻔했지요.”
지금에서야 그녀가 폭로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일화가 인터넷에서 회자되고 있지만, 당시 그녀가 받아야 했던 비난과 매도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녀의 아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한 행동이 정정당당했다는 그녀는, 다만 아이가 겪은 상처와 좌절 그리고 분노에 늘 가슴 아파했다고 토로했다.

아들과의 지난한 전쟁

물론 그녀의 아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엄마의 부재였다. 엄마의 세심한 손길과 따스한 말 한마디가 절실한 10대를 나 홀로 보냈기 때문이다. 파란만장한 날의 연속이었지만 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한 그녀였기에 아들도 자신처럼 씩씩하고 강인하게 자랄 것이란 기대를 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세상에 늘 촉을 세우고 살았지만 정작 아들의 상처와 상태에 대해 둔감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통감해야 했던 나날이었다.
“지역구에서 만난 사람은 대부분 좋은 분이었어요. 그러나 특정한 정당을 지지하는 선생님에게 아이가 큰 상처를 받은 모양이더라고요. 엄마의 정치적인 문제로 친구들과 다투기 일쑤였고, 저는 가서 빌고 또 빌었지요. 아이의 상처가 곪아 터져 저에 대한 미움, 분노로 이어질 때는 정말 아찔했어요. 엄마가 나에게 해준 게 뭐가 있느냐? 아들의 말은 다 사실이었고, 저는 늘 죄인 같았습니다.”
평범한 엄마로 돌아온 그녀는 아들과 지난한 전쟁을 치러야 했다. 그의 가슴에 뜨거운 응어리가 가득했고, 깊은 옹이가 파여 있었으므로…. 더욱이 아들은 경쟁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통로인 교육의 사각지대에 서 있었다. 학교는 아이에게 냉정했다. 서울의 괜찮은 대학, 소위 sky에 들어갈 소수 아이에게 모든 교육이 집중됐다. 그녀가 선생님을 찾아가 간곡히 부탁도 해봤지만, 모두 소용없는 일이었다.
며칠 밤을 뒤척이며 고심하던 그녀는 결국 아이의 인생에 있어 아주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아이에게 학교는 남들 등록금 보태주는 일밖에 안 되겠더라고요. 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로 대학에 가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았어요. 아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지요. 다행히 비슷한 시기에 저도 정치를 그만두었던지라 아이를 위해 딱 두 가지를 결심했어요. 첫째, 열심히 밥해 주기. 둘째, 돈의 이치에 대해 알려주기!”

정성스러운 밥상의 힘

매일 아침, 저녁 오롯이 아들을 위해 정성스럽게 밥상을 차린 그녀는 항상 갓 지은 냄비 밥을 함께 상에 올렸다. 그리고 예쁜 그릇과 수저받침도.
“엄마가 이렇게 대접해서 밥상을 차려주면 어디 가서도 대접받지 않을까 싶었어요. 아이가 무슨 한정식 같다며 놀라는데, 항상 이렇게 해주고 싶었다는 말로 답을 대신하곤 했습니다. 아이에 대한 제 사랑을 보여주려고 온 힘을 다했어요.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절대 너를 포기하지 않고, 네 옆에 있을 거라는 믿음도 심어주었지요.”
그녀의 진심이 통한 것일까? 아이는 동네 학원에 착실히 다니며 이내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자동차 튜닝이라는 하고 싶은 일도 곧 찾아냈다.
“너무 기뻤어요. 사실 한동안 애가 기타에 빠져 있어 걱정이 많았었거든요. 평생 손에 기름때를 묻히며 살겠지만, 언더그라운드 가수로 반 지하에 사는 것보다 조그만 정비센터를 차려 자영업자가 되는 게 훨씬 순탄해 보였어요.”
그러나 카센터를 경영하기 위해서도 적잖은 자본 조달이 필요한 법. 혹여라도 아이가 허드렛일만 하며 고생하지는 않을까 조바심에 사무치기도 했다. 흙수저 청춘. 국회의원이었던 그녀의 아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명예와 권력을 얻으려면 시험에 통과하거나 남들이 인정하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 아이가 그 길을 가기엔 이미 힘들어 보인다. 그러나 부자가 되는 길은 열려 있지 않을까?
“흙수저니 금수저니 하는 것도 결국 돈을 기준으로 하는 신조어잖아요. 흙수저가 금수저 될 가능성은 충분하지요. 그러려면 돈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아이에게 돈을 어떻게 벌어야 하고, 돈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를 기회가 닿을 때마다 이야기했습니다. 아이가 경제적으로 자립해 자존감을 느끼고 살았으면 하는 바람뿐이었어요.”

검소함은 최고의 사치다

그때부터다. 흙수저 아들을 위한 그녀의 밥상머리 경제 교육이 시작되었다. 그녀의 가르침이 엄청나게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이를테면 ‘작은 돈은 아끼고 큰돈은 과감히 써라’, ‘돈과 운명을 네가 직접 관리해라’, ‘저축부터 해라’, ‘푼돈을 소중히 다뤄라’, ‘판을 읽어라’ 등의 식이었다. 특히 그녀는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살아있는 경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 집중했다.
다행히도 아들은 그녀의 돈 이야기에 흥미를 가졌다. 무엇보다 검소한 생활의 가치를 알고, 부자가 되고 싶다는 건전한 욕망을 드러냈다. 돈이 귀한 것, 돈이 무서운 것, 돈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잘 이해하게 됐다는 것만 해도 그녀의 경제 교육은 큰 성공을 거둔 셈이다.
“내 아들이 과연 제 밥벌이를 할 수 있을까? 여느 부모들의 공통된 고민이라고 생각해요. 외국 학교에서는 주식투자법에 대해서도 알려준다는데, 우리나라는 경제교육을 너무 등한시하는 것 같아요. 더군다나 88만원 세대 아이들에게는 작은 돈이라도 어떻게 저축해서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질적인 경제교육이 필요하지요. 금리가 왜 오르는지, 브렉시트가 무엇인지 아이와 밥 먹을 때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눴더니 애도 조금씩 달라지더라고요. 무엇보다 검소함이 최고의 사치라는 점을 크게 강조했는데, 애가 운동화가 떨어질 때까지 신고 다니는 것을 보고 굉장히 뿌듯했습니다. 밥상머리 교육이 큰 힘을 발휘했지요.”
결혼 후 아이를 낳자마자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야 했던 그녀는 어릴 때부터 아이와 함께 보낸 시간이 많지 않아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었다. 그래서 더욱, 지난 4년간이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보람찬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현대 워킹맘들에게도 꼭 이야기하고 싶어요. 왜, 직장에 다니다 보면 회식이 많잖아요. 회식도 업무의 연장선이라고들 하는데, 집에 아이가 기다리고 있는 엄마라면 참석하지 않아도 좋아요. 그래도 됩니다. 사내 네트워킹이 잘 형성되지 못할까봐 불안하다면 점심 때 동료들과 커피 한잔 마시며 수다 떠는 것만으로 충분해요. 술자리에서 유독 중요한 이야기가 오간다면 그 직장의 미래는 없습니다. 그 시간에 차라리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세요.”

최순실 사건, 참담하고 부끄럽다

정치인에서 아들 바보로 돌아온 전여옥 전 의원. 이제 곧 스무살이 될 아들과의 전쟁을 잘 이겨낸 그녀가 다시 정치에 뛰어들 욕심은 없는지 궁금했다.
“저는 뭐든지 스스로 하고 싶어야 움직이는 사람인데요. 정치에 대한 열정은 이미 사라졌어요. 정치인으로서 크나큰 상처를 받았고,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던 만큼 더 이상 미련도 없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사람들, 좋은 분들, 에너지 있는 이들이 정치권에 들어가서 판을 완전히 뒤집어버렸으면 해요.”
그래도 최순실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한지라, 그녀는 기존 정치권에 대한 쓰디쓴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절대 제 발로 물러나지 않을 거예요. 청와대가 자기 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인걸요. 아주 냉혹하고 무서운 사람입니다. 그걸 예전부터 미리 알고 절대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될 사람이라고 외쳤다가 저만 이상한 사람, 배신자로 낙인찍혔지요. 참담하고 부끄럽습니다. 대통령에게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스스로 하야 하라고 정치권에서 끝없이 요구해야 해요. 분명 쉽지만은 않은 길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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